[경험공유회]덜 불안하게, 무소속의 시간 보내기

퇴사 후 세 번째 무소속의 시간을 맞이한 이선빈 님은 빌라선샤인에서 소셜클럽 '위클리 무소속 저널'을 만들고 새로운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그건 무소속의 불안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과정이기도 했지요. 같은 무소속의 상태에 있어도 예전과 비교해 지금 선빈 님의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위클리 무소속 저널'의 어떤 활동들이 선빈 님에게 특히 의미 있었는지, 더 나아가 '무소속'이라는 표현에 대한 선빈 님의 시각은 어떻게 새로워졌는지 들어보세요. (* 위클리 무소속 저널은 현재 '무소속 뉴먼 베이스캠프'로 이름을 바꾸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선빈
데이터(Data)를 인텔리전스(Intelligence)로 만들어 사업 개발을 돕는 일을 합니다. 관심 분야와 지식이 넓고 얕지만, 일단 마음이 향하면 가늘고 길게 꾸준히 합니다. 평생의 관심사는 유럽과 언어입니다. 요즘은 필라테스를 하면서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법을 배우고, 꽃꽂이를 배우면서 꽃집 연습생을 꿈꿉니다.



회사에 다니지 않을 때는 자기소개를 하기가 힘들죠. 저는 조직 밖에서 잠시 일을 쉬고 있는 지금의 저를 ‘자기 자신에게 종사하는 풀타임 근무자'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빌라선샤인에서 함께 소셜클럽 활동을 했던 한 멤버 분이 만들어주신 멋진 타이틀이에요.

저는 외국계 B2B 리서치 회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 겸 오피스 매니저로 4년 반 정도, 국내 광고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신규사업팀 매니저로 6개월 정도 일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6월 말 퇴사했어요. 회사에서 하는 업무가 제가 하고 싶었던 업무와 많이 달랐고, 회사가 속한 업종 자체도 저에게 그 의미가 잘 와 닿지 않았거든요. 회사 안이 아니라 밖에서 기회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해서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고 지내는 건 지금이 세 번째인데요, 익숙해질 만도 한데 불안한 건 매한가지더라고요. 조직에 속해있지 않을 때 불안한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해봤습니다.

첫 번째로는, 저라는 사람에게서 ‘일하는 이선빈'이라는 정체성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일이 없어지니 저 자신이 의미 없는 존재로 느껴지더라고요. 두 번째로는 경험과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가진 경험과 능력으로 어디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건 학교를 졸업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품고 있는 질문인데요, 여기에 스스로 자신 있게 대답한 적이 없었어요. 세 번째로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족에게도 각자의 일상이 있고, 가까운 친구나 친지들도 거의 일을 하고 있죠. 제가 만나서 교류하는 데 제약이 있어요. 더군다나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여행도 가지 못했고 외출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외롭기도 하고 ‘내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불안해졌어요.

회사를 그만뒀던 올해 6월 말, 7월 초에도 불안했습니다. 시간이 많으니까 스마트폰으로 웹서핑을 자주 하고, 빌라선샤인 멤버들이 함께 사용하는 슬랙도 자주 봤어요. 그러다 ‘나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잠깐 쉬는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슬랙에 글을 올렸는데, 많은 분들이 반응을 해주시더라고요. 그것이 번개 모임으로, 다시 위클리 무소속 저널이라는 소셜클럽으로 이어졌습니다.

무소속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


어떤 틀로 이 모임을 만들까 고민할 때, 밑바탕에 깔려있는 필요는 ‘연결'이었습니다. 저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거나, 회사 밖에서 무언가 하고 있는 무소속 멤버들을 만나고 싶었거든요. ‘그럼 무엇을 매개로 이 연결을 만들어낼까?’라는 고민도 하게 되었는데요, 저에게 필요했던 것과 번개 모임에서 만난 멤버들이 이야기했던 것 사이에서 교집합을 찾았습니다. 

먼저 ‘일상'. 루틴이 흐트러지면 자책감이나 무기력감, 우울감이 들잖아요. 부정적인 감정이 한번 일어나기 시작하면 생활 습관이 또 무너지고, 그러면 부정적인 감정을 더 크게 불러오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루틴을 챙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뭔가를 하려고 하면 쉽게 작심삼일이 되니까요.

그다음으로는 ‘기록'. 일을 그만두고 쉴 경우, 그 시간을 보통 ‘공백기'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저도 예전에 두 번 무소속의 시간을 보내면서 일기나 메모를 따로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 제가 뭘 했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니까 정말로 그 시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공백기처럼 느껴졌어요. 세 번째 무소속 상태인 이번에는 사소한 것이라도 기록으로 남겨보자고 다짐했습니다. 무소속으로 보내는 지금의 이 시간이 단순한 공백기가 아니라는 걸, 가장 먼저 저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기록'을 모임의 두 번째 키워드로 뽑았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콘텐츠'입니다. 소셜클럽에서 일상을 함께 챙기고 기록을 남긴 후, 이 기록을 활용해 약간의 큐레이션 또는 편집을 한다면 품을 크게 들이지 않고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렇게 일상, 기록, 콘텐츠를 매개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총 아홉 명의 멤버가 7주 동안 위클리 무소속 저널 활동을 함께했습니다.

위클리 무소속 저널의 세 가지 축: 회고, 온라인 체크인 티타임, 릴레이 인터뷰


위클리 무소속 저널에서 저희가 했던 활동은 세 가지 축으로 이루어졌어요. 첫 번째는 회고입니다. 일상과 기록을 챙기기 위한 활동인데요, 매주 주말마다 이번 주에 했던 일이나 계획의 실천 정도, 나에게 영감이나 위로를 준 것이 무엇이었는지 글로 쓴 다음 슬랙에서 다른 멤버들과 공유했습니다. 두 번째는 온라인 체크인 티타임이에요. 멤버들끼리 친밀감을 쌓고 연결되려면 서로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대화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 주의 중간인 수요일 저녁에 줌으로 만나 가볍게 수다 떠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는 릴레이 인터뷰입니다. 회고를 하다 보니 이걸로 콘텐츠를 만들기가 조금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클럽 멤버 중 한 분이 “우리끼리 릴레이 인터뷰를 해보면 어떨까요?”라는 아이디어를 주셨고, 그것을 바탕으로 모든 클럽 멤버가 다 함께 인터뷰를 기획하고 진행했습니다.



제가 소셜클럽을 만들고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다른 멤버들 덕분이었어요. 이 분들의 아이디어와 응원, 격려를 받아 제가 직접 일을 벌여봤다는 데서 효능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저는 지난 5년 동안 주로 사업 전략 만드는 일을 지원하는 업무를 해왔는데, 제가 하고 싶은 건 직접 전략을 세워서 실행하는 일이었습니다. 올해 6월 말에 퇴사하면서도 작은 것이라도 만들어서 굴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소셜클럽을 하다 보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그런 거 아닐까?’ 싶었어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이런 맥락, 이런 환경에서도 이렇게 풀어낼 수 있구나!’라는 효능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회사에서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를 정리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소셜클럽을 통해 멋진 동료를 만나고, 덜 불안하고 덜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할 줄 아는 게 있구나, 앞으로 어디서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여전히 불안하지만, 그래도


사실 소셜클럽 활동을 했다고 해서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전보다는 조금 덜 흔들리고, 자기중심을 잘 잡을 수 있게 됐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는 현재의 저를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저는 무소속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에 눌려있었고, 그래서 퇴사한 후에도 빨리 다른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조바심을 많이 느꼈어요. 

그런데 함께 소셜클럽 활동을 하는 다른 멤버 분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무소속의 시간이란 공백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속하는 시간이라고요. 다른 분들도 ‘우리가 일을 다시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양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일이라고, 우리가 회사를 잠시 쉬고 있는 이 시간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양을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이야기해주셨고요.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지금의 제 상황을 다시 바라보게 됐어요. 제가 새롭게 정의해본 ‘무소속 상태의 노동자’란 다른 사람이 만든 조직 밖에서 내가 원하는 삶, 내가 원하는 일의 방향을 찾거나 직접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정의하고 나니 저처럼 회사를 그만두거나 첫 직장을 찾고 있는 사람이 그저 공백기를 거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나가는 적극적이고 자립적인 사람으로 느껴졌어요. 

회사와 일을 바라보는 관점도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예전에 저는 저를 회사에서만 일할 수 있는 ‘회사 인간'이라고 생각했어요. 회사를 그만두면 ‘이제 어디 가지? 나를 받아 줄 회사가 있을까?’라는 걱정 때문에 불안했어요. 위클리 무소속 저널에서 다른 분들이 프리랜서로 신나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 회사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중점에 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회사에 가서 더 잘할 수 있으면 회사에 들어가는 거고, 그게 아니면 회사 바깥에서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겠더라고요. 이런 관점으로 회사와 일을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했더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어요. 

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위험과 불확실성보다는 안정과 확실성을 선호하는 사람이에요. 예전과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 프리랜서나 독립 노동자를 선택지에서 완전히 배제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고려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회사 말고 다른 것도 있다고 생각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도 덜 불안해졌어요. 앞으로 다시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더라도 예전처럼 회사에 얽매이기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중점에 두려고 합니다. 




WORDS. 이선빈 (위클리 무소속 저널 리더)
EDIT. 황효진 (빌라선샤인 콘텐츠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