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공유회]커리어 전환, 제가 한번 해봤습니다

누군가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하기로 할 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포기나 실패라고 말합니다. 때문에 커리어를 전환하는 것은 모두에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요. 빌라선샤인 멤버이자 마케터인 김혜진 님은 커리어 전환을 '나의 비전에 도달하기 위한 전략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오랫동안 일했던 미술 업계에서 정보와 네트워크가 전혀 없는 IT 스타트업으로 커리어를 전환하기 위해, 김혜진 님은 어떤 시간을 거쳤을까요? 업계 관련 정보를 파악하는 법부터 업계의 눈으로 나를 새롭게 바라보며 이력서 쓰는 법, 면접을 보는 방법까지 김혜진 님의 경험을 만나보세요.

김혜진
미술계에서 아티스트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프로덕션 일을 했습니다. 충만감을 주는 일을 찾아 여러 실험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비즈니스가 되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생태계를 연구합니다.

* 빌라선샤인 [경험공유회]의 발표 내용을 요약/편집했습니다.


저는 전시 기획자로 일하다가 29살에 IT 스타트업의 인턴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 미술계에서 10년을 일했는데 ‘바쁘지 않을 때는 월급 30만 원만 받아도 되지 않아?’라는 말을 들었고, 1년 뒤 제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거든요. 커리어를 전환할 때 목표는 두 가지였습니다. 지속가능성이 있는 일을 할 것, 그리고 비즈니스를 할 것.

미술계 외길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업계를 옮기려고 하니 너무 막막하더라고요. 인맥도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우선 이런 부분을 생각했습니다. 나의 현실적인 조건은 어떤가? 커리어 전환을 원하는 업계에 내가 진입 가능한 상황인가? 그곳에서 주로 하는 일은 무엇이고, 실제로 업계는 어떻게 돌아가나? 저는 당시 29살이었고, 기본적인 생계가 유지되지 않아서 당장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딱 세 달 동안 준비해서 회사를 들어간 후에 3년을 버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커리어를 전환하고 3년 동안은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테스트하는 기간으로 정하기로 한 거죠.

데드라인이 있으면 해야 할 일들이 착착착 정해집니다. 일단은 내가 가고 싶은 업계에 내가 누울 자리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그러니까 내가 거기서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 보기 위해 채용공고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그 업계에서 어떤 사람을 뽑는지가 중요하니까요. 거기서 모은 정보를 활용해 ‘김혜진 2.0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상상의 이력서를 만들었어요. 거기에 따라 포트폴리오의 스토리라인을 정리했습니다.

업계 정보를 파악하는 방법


본격적으로 커리어 전환을 준비할 때, 가장 돈이 적게 드는 방법은 독서였어요. 가고자 하는 업계와 관련된 서적을 최소 열 권은 읽으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이나 경영, 마케팅 관련 책을 주로 읽었습니다. 업계 실무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마케팅에서 크리에이티브를 잘할 수는 없으니까, 데이터나 분석력을 강점으로 밀어야겠다’라는 감을 잡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해당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쓰는 글을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 경우에는 아웃스탠딩플래텀, ㅍㅍㅅㅅ, 슬로우뉴스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런 매체를 통해 업계 사람들이 큐레이션 한 뉴스와 관련 오피니언을 함께 확인할 수 있어요. 옮기고자 하는 업계에 관한 지식이 없을 때는 이슈와 관점이 같이 정리된 글을 보면서 나만의 시각을 다듬어갈 수 있습니다.

공짜로 할 수 있는 조사가 어느 정도 끝나면, 이제 뭐가 조금 보일 거예요. 그런데 그다음 단계는 혼자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업계 내부 정보를 아는 것도 필요하니까요. 저는 이벤터스 같은 플랫폼을 열심히 활용했어요. 무료 행사는 무조건 참석했고요. 이런 플랫폼에는 일대일 멘토링 서비스도 많은데요, 사실 내 이야기를 진짜로 들어줄 사람을 찾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커리어 멘토링을 하시는 분께 페이스북 메시지를 개인적으로 보내서 ‘저는 이런 사람인데, 어디서 멘토링을 받는 게 더 좋을까요?’라고 묻고, 그분이 오시는 콘퍼런스에 직접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기도 했어요. 이렇게 나를 알리고 그 사람과의 접점을 찾으면,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조금 더 나에게 맞춘 조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탈잉’의 강의도 정말 많이 들었어요. 말하자면 저의 자문단을 셀프로 꾸린 거죠. 관심 있는 키워드 관련 강의를 하시거나 제가 가고 싶은 회사 소속이거나, 관심 있는 업계에 있는 분들의 수업은 다 들었습니다.

업계의 눈으로 나를 새롭게 보기


자료 조사를 하고 나서 이제 이력서를 쓰게 됩니다. 이력서도 한 번에 완성되지는 않아요. 이력서를 쓰는 건 제가 생각하는 ‘김혜진 2.0’의 프로필이 있고, 거기에 필요한 것을 하나씩 장착하는 과정입니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계속 보면서 그 이력서를 나에게 최적화시키는 일인 것이죠. 

저는 그전까지 이력서를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본격적인 커리어 전환 준비 전에는 ‘이 업계에 내가 누울 자리가 있나?’를 파악하기 위해 채용공고를 읽었다면, 이력서를 쓰기 위해서 채용공고를 또 읽으며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는 법이나 문장을 구성하는 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업계의 눈으로 저를 보는 작업도 필요했어요. 예를 들어 미술계에서 제가 영어를 할 줄 아는 아르바이트 또는 코디네이터였다면, IT 스타트업에서는 글로벌 경험이 있는 프로젝트 매니저라고 설명할 수 있겠지요. ‘해외 작가들과 여러 지역에서 전시를 진행해본 코디네이터’라는 미술계 용어는 IT 스타트업에서는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제품을 기획하거나 이벤트를 론칭해본 프로젝트 매니저’라고 정리할 수 있겠고요. 이력서를 쓰면서 커리어 역할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강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술계에서는 유명한 사람들과 일을 많이 해서 잔뼈가 굵다는 게 저의 강점이었다면, IT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맨땅에 헤딩 정신’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글로벌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해봤다는 게 강점으로 작용할 것 같았어요. 항상 다른 업계의 다른 사람과 일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일했기 때문에 무엇이든 빠르게 조사하고 정보를 찾고 다른 사람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일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패스트 러너(fast-learner)라는 점이 또 다른 강점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틀이 잡히고 나를 보는 새로운 눈이 생기면 자신의 스킬셋도 재평가할 수 있게 됩니다. 미술계에 있을 때는 주변에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서 잘 몰랐지만 한국어와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로 업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것, 유명한 사람들과 작업을 했기 때문에 다매체 콘텐츠 기획/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이 저의 주요 스킬셋이었어요. 전시 관련 부대행사를 해본 경험은 홍보 이벤트 기획으로, 아르바이트로 했던 인터넷 쇼핑몰의 SNS 관리 업무는 이커머스 경험으로 정리해서 이력서를 썼습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1) 담당자가 모르는 고유명사는 빼고 동사 위주로 내 강점이 드러나게 쓴다 2) 이전 이력이 길더라도 키워드 하나 정도로 압축해서 쓴다 3) 지금 지원하는 업계와 직무에 적합한 순서대로 정리한다 는 것입니다. 

면접은 '선택 받는 것'이 아니라 협상


이렇게 해도 면접까지 가기는 어렵습니다. 인사팀 필터에서 걸리거든요. 3년 차/5년 차/전공 등을 엑셀로 걸어놓고 이 조건에 맞지 않으면 서류에서 떨어지는 거예요. 이 업계에서 일할 수 있고 관련 경력이 있다는 것도 저의 주장일 뿐이죠. 다른 업계에서 쌓은 것이긴 하지만 경력이 있으니 오히려 일을 막 시킬 수 없어서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요.

저는 이 모든 문제가 저한테 유리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여기저기 서류 돌리는 걸 그만두고, 직접 찾아가기로 했어요. 마침 어떤 기업에서 콘퍼런스를 여는데, 공채가 막 끝났더라고요. 너무 아까워서 콘퍼런스에 직접 참석해 대표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이사님을 소개해주셔서 30분 동안 대화를 나누고, 이력서를 보낸 후 면접 기회를 얻을 수 있었어요. 

따로 대화를 나눌 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어도 실제로 면접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여기 왜 오려고 하세요?’ ‘일 할 수 있어요?’ ‘대우를 많이 못해주는데 진짜 일할 거예요?’라고 묻는 거예요. 이럴 때 절대 ‘열정’을 강조하면 안 됩니다. 회사와 나의 접점을 찾아서 나를 제안한다고 생각해야 해요. ‘저는 이런 일을 했고, 귀사에서 하고 있는 이 일에 흥미가 있는데 제가 했던 일과 유사하고 이건 제가 확실하게 잘할 수 있다’라는 것을 어필해야 합니다. 회사의 목표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잘 정리해서 협상하는 거예요. 

제가 이 과정을 ‘협상’이라고 생각한 근거가 있어요. 이 업계에는 그 회사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여기 가지 않으면 다른 회사에 가도 됩니다. 면접에서 떨어지더라도 ‘이 업계에서 이 회사는 이런 단계에 있고, 여기서는 나를 이렇게 보는구나’에 대한 데이터를 얻을 수가 있죠. 이 회사에 입사하는 게 누군가의 선택을 받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했어요.

그래서 진짜 시작은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부터입니다. 면접에서 한두 시간 이야기한 걸로 일은 구했어도, 업계에서 정말로 인정을 받으려면 일하는 동안 실력을 쌓고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물꼬를 튼 것일 뿐이니까요.  

커리어 전환=비전에 도달하는 전략을 찾는 과정


저는 위에서 언급한 회사에 짧게 다녔고, 이후 이직했어요. 인턴으로 일하며 콘텐츠 만들기와 커뮤니티 빌딩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로스’라는 좋은 키워드를 찾게 되어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SaaS 스타트업으로 이직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커리어 전환은, 직업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것인 거 같아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커리어를 전환하려고 하는 거죠. 지금 몸 담고 있는 곳이 안전지대일 수도 있어요. 항상 했던 일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벗어나기로 결정한 후에 거기서 그냥 버틸 때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보통은 회사를 그만두거나 업계를 벗어나면 버티지 못한 거니까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저를 보며 ‘미술계에서 조금만 더 버텼으면 큰 인물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포기하다니’라고 생각하는 동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실패라기보다는 나에게 그 일이 맞는지 아닌지 따져보고, 정보를 얻고 스스로 피드백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커리어를 바꾼다고 해서 나의 정체성이나 비전이 통째로 바뀌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비전에 도달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보고, 그중 무엇이 나에게 가장 맞는지 알아보는 과정인 것이지요. 


일정 기간 동안 한 전략을 실행하다가 잠깐 멈춰 서서 둘러보며 이쯤에서 시도할 만한 더 좋은 전략(오르기에 더 가망성 높은 경사지)이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ㅡ <다크호스>


저에게는 미술계 산과 IT 스타트업계 산이 있었어요. 어떤 업계든 성공하기 위해서는 산에 올라야 하고, 올라갈수록 고지대라서 힘듭니다. 다른 업계로 가는 것은 이 산에서 내려와 저 산으로 새로 올라가야 하는 일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산을 바꿔보니까, 올라가면 그 능선에서 보이는 다른 봉우리가 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이 산과 저 산이 다르지 않았던 거예요. 모든 게 제 인생의 풍경 중 일부였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WORDS. 김혜진 (마케터/브런치 바로가기)
EDIT. 황효진 (빌라선샤인 콘텐츠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