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콘텐츠]온라인 퀴어퍼레이드 기획자/디자이너 김헵시바 인터뷰

지난 6월 23일,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상식을 이야기하는 미디어 닷페이스는 온라인 퀴어퍼레이드(이하 온라인 퀴퍼)를 열었습니다. 닷페이스에서 만든 웹사이트에 접속해 각자의 캐릭터를 만들고,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에 인증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라는 해시태그를 클릭해 모아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만든 다양한 캐릭터가 도로를 행진하고 있는 것 같은 장면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세대를 위한 프로젝트인 것이죠.

오픈 일주일 만에 누적 게시물 수 2만 9천 개, 이메일 누적 데이터 8만 3천 개를 기록한 온라인 퀴퍼는 닷페이스의 김헵시바 디자이너가 시작한 기획입니다. 어떤 기획 과정을 거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김헵시바 디자이너에게 서면으로 물었습니다.



닷페이스가 기획한 온라인 퀴퍼



'인스타그램의 개인 피드와 해시태그 모아보기를 통한 온라인 퀴퍼'라는 기획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김헵시바: 올해 초만 해도 프라이드의 달인 6월에 딱 맞춰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미뤄지게 된 것이 너무 아쉬웠어요. 닷페이스의 대표이자 동료인 썸머와 함께 담배를 피우다가 "이제 6월인데 퀴퍼에 못 가는 게 말이 되냐. 온라인 퀴퍼라도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더니 썸머가 "나이키 에어맥스 줄 서기 캠페인 2.0처럼? 우리가 하면 되지!"라고 하더라고요. 상상을 실현으로 옮겨주는 동료의 힘이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5월에 기획을 시작했는데 6월에 이벤트를 론칭하셨죠. 넉넉한 일정이 아니었는데, 스투키 스튜디오의 정유미 디자이너 및 김태경 개발자와도 협업을 하셨어요.

김헵시바: 처음 이야기가 나온 게 5월 13일, 닷페이스가 한창 <내가 만드는 하루>라는 캠페인을 준비하느라 바쁜 시기였어요. 썸머가 사무실에 오자마자 닷페이스 슬랙 채널에 제안을 올려주었고, 또 다른 동료 혬이 스투키 스튜디오와 협업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어요. 그때 혬이 보여준 레퍼런스가 '월경 페스티벌'에 참여한 스투키의 작업이었습니다. 자신의 월경 특징에 맞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웹사이트였어요. 보자마자 '이 프로젝트는 스투키와 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어요.


협업 과정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김헵시바: 빠른 협업에는 여러 동료들의 공이 컸어요. 제가 쓴 제안서와 기획서는 혬의 손을 거칠 때마다 놀랍도록 빈틈없는 문서로 바뀌었고, 스투키에서도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꼼꼼하게 잘 챙겨주셨어요. 공유 노션 페이지나 같은 슬랙 채널을 사용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해결해야 하는 이슈를 노션 페이지에 테이블 형태로 쌓아놓고 개발 현황을 체크하거나, 슬랙에서 크고 작은 커뮤니케이션을 소화해내는 방식으로 일했어요. 덕분에 스투키 스튜디오와 전부터 한 팀이었던 것처럼 손발을 착착 맞춰 일할 수 있었습니다.


온라인 퀴퍼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주요 경험에 대한 상상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

김헵시바: 퀴어들에게 가장 주고 싶은 경험은 온라인 퀴퍼에 길게 늘어진 행렬을 통해 '당신의 곁에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라는 것이었어요. 얼마 전 이태원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퀴어 혐오적인 언론 보도들이 나오기도 했거든요. 사진이 올라가는 개인 피드에서는 각자의 신념과 정체성을 주변에 표현하는 경험을, 같은 해시태그가 모이는 피드에서는 다 같이 모여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경험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참여자가 많아야 했습니다. 참여자가 많으려면 참여 장벽이 낮아야 했고요. 장벽을 낮추기 위해 행진에 참여하는 경험만큼 나만의 캐릭터를 만드는 경험에도 무게를 많이 뒀어요. UI/UX 초기 기획을 담당한 동료 혬의 ‘겟 레디 윗 미(get ready with me)’ 콘셉트가 특히 유용했습니다. 매 단계에 대한 리액션이나 닉네임 부르기 같은 상냥한 장치를 두고 사용자들과 친밀감을 형성하려고 했어요.



매 단계마다 다정한 리액션이 등장하는 온라인 퀴퍼 캐릭터 만들기 사이트



그런데 사람 캐릭터를 디자인해야 하는 작업 자체가 까다로웠을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헵시바: 운영을 맡은 동료 더기가 "이 이벤트의 성공 여부는 이미지의 매력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사람 캐릭터를 써야 사람들이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할 것이고, 그게 참여의 동기가 될 거다. 사람들이 모여 행진을 하는 장면이어야 더 인상적이지 않겠느냐."라는 피드백을 주었어요. 사람 캐릭터 작업을 빠르게 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 정확한 피드백이라 그다음 날 바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기본 사람 디자인을 잡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어요. 시각적 재미를 살리고 싶었는데 만든 이미지들이 모두 재미없게 느껴졌거든요. 그때 스투키에서 '사람들은 퀴퍼에서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을 거예요' '좀 더 RGB스러운 컬러를 써보는 건 어떨까요?'라는 결정적인 의견을 주셨습니다. 덕분에 유니크한 차림새를 한 네온 컬러 캐릭터라는 방향을 잡게 되었고, 그 이후로 작업하는 게 확 재미있어졌어요.


이 이벤트를 진행하며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을까요?

김헵시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사용자들에게 배제되지 않는 경험을 주는 것이었어요. 제한된 선택지를 통해 웹사이트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포괄할 수 없다는 건 알았지만, 제가 노력하는 만큼 안전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더 많은 사람에게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놀랍게도 이 기준을 통해 의도했던 시각적 재미까지 살릴 수 있었어요. 이를테면 여성형/남성형을 딱 구분할 수 없는 몇 가지 헤어스타일(분수 머리, 옆머리를 민 똥머리, 불꽃 머리)을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반대로 시각적 재미를 위해 '아예 사람 피부색이 아닌 컬러로 얼굴을 설정하자'라고 결정했더니 인종 중립적인 샛노란색을 선택할 수 있게 됐어요. 인권에 관해 이야기할 때 자주 쓰이는 '상상력'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디자인에서 쓰이는 '상상력'이라는 단어가 어쩌면 같은 것을 향할 수도 있겠다는 배움을 얻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너무 올바른 결과물이 나와서 재미가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우려를 꺾어주는 배움이었어요.

사이트를 오픈하고 제보를 통해 발견한 빈틈들도 있었어요. '재수의 연습장' 재수 작가님이 '민머리 옵션이 없어서 직접 그렸다'는 게시글을 올려주신 걸 보고 뒤늦게 민머리 옵션을 추가했습니다. 전맹 시각장애인을 위한 접근성을 더 올려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해당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기도 하고요.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크지만, 한편으로는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의견을 낼수록 더 많은 사람을 포괄할 수 있는 이벤트가 되어가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잠깐 헵시바 님의 캐릭터도 소개해주세요.

김헵시바: 제 캐릭터의 콘셉트는 '애사심 바이섹슈얼'이에요. 오픈 이후 함께 이 멋진 일을 벌인 동료들에 대한 사랑, 이 행렬을 완성시켜준 퀴어/퀴어 앨라이들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는 기분이었거든요. 모든 요소를 보라색으로 맞추고, 닷페이스 BI를 적용한 셔츠를 입었어요. 망사 스타킹은 실제로 제가 자주 신어서 골랐고, 양똥머리는 신기하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다들 "어, 이 머리는 헵시바 머리잖아!"라고 해주셔서 골랐습니다.


김헵시바 디자이너의 온라인 퀴퍼 캐릭터



닷페이스는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상식을 이야기하는 미디어'잖아요. 청소년 성매매 고발이나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 일상 회복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처음 닷페이스에 합류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김헵시바: <Here I am> 프로젝트와 섹스 토크쇼를 담당할 프로젝트 디자이너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해서 합류하게 되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프로젝트를 수행할 3개월이었어요. 일하다 보니 저한테 닷페이스가, 닷페이스가 저한테 필요한 이유들이 점점 생기더라고요. 동료들과 닷페이스의 문화가 마음에 들었고, 회사 곳곳에 인하우스 디자이너의 손길이 필요한 일들도 많아 보였어요. 그래서 정규직 제안을 받고 눌러앉게 됐습니다.


닷페이스 멤버십 회원인 '닷페피플'에게 보내는 '닷페레터'를 통해 "폭력에 대한 디자인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쓰신 걸 봤어요. 닷페이스가 비교적 무거운 사회 이슈를 전면으로 다루는 미디어이다 보니 디자인을 하실 때도 더욱 고민되는 지점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김헵시바: 그 글에서 이런 말을 했을 거예요. '현실을 무시하고 아름다운 것만 그리고 싶지도 않았고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재현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고요. 그러다 보니 두 가지 선택지가 아닌 다른 방식들을 계속 찾아내려고 신경 쓰게 되고, 작업도 어려워져요. 특히 그런 무거운 작업에 굿즈가 붙으면 더 어렵더라고요. 굿즈에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게 우선인데, 이것이 사회의 비판받아야 할 지점을 오히려 미화할 수도 있으니까요. 다행히 요즘은 굿즈를 잘 만들지 않지만요.

닷페이스에서 제가 초반에 한 작업을 보면 그런 줄타기에 많이 실패했어요. <Here I am>의 경우에는 아예 방법을 몰라서 텍스트를 단순하게 강조하는 방식의 작업을 했더니 '굿즈가 예쁘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어떤 시각적 인상을 주진 못했던 것 같아요. 타이 마사지숍 내 묵인되는 성매매 문제와 노동 문제를 다루는 <타이마사지>에서는 타이 마사지숍에서 자주 사용되는 오리엔탈리즘적 이미지와 문양을 차용했는데, 그런 이미지를 너무 검열 없이 재생산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만족스러웠던 결과물은 출판사 봄알람과 함께 한 프로젝트 <세탁소의 여자들> 디자인이에요. 메인 심볼을 아예 생존자이자 투쟁하는 주체를 의미하는 하얀 말로 잡았고, 여성들을 착취했던 장소인 세탁소를 암시하는 세탁기 속의 물살을 국경을 넘어선 연대를 상징하는 파도처럼 보이게 변형했어요. 세탁기로도 보이고 파도를 가르는 하얀 말로도 보일 수 있게끔 하고 싶었거든요. 이 심벌은 굿즈인 유리컵에도 아주 잘 어울렸어요. 그 이후로는 디자인에서 현실을 담아내더라도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치를 하나씩은 심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른 방식에 대한 고민도 계속하는 중이고요.


<세탁소의 여자들> 디자인이 들어간 유리컵 굿즈 (출처: <세탁소의 여자들> 텀블벅 페이지)



닷페이스에서 디자인을 비롯해 다양한 업무를 맡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김헵시바: 제 손길이 필요한 모든 디자인을 하는데, 제가 잘하고 좋아하는 건 일러스트레이션을 기반으로 팀의 메시지를 영상 안팎으로 시각화하는 일입니다. 디자인이 아닌 일도 해요. 디자인 외에는 주로 닷페피플 또는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영상 자막의 맞춤법을 고칩니다.

이번 온라인 퀴퍼에서는 프로젝트 리더, 기획, 소스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을 맡았어요. 이렇게 메인으로 프로젝트 리더와 기획을 맡은 건 처음이었죠. 하지만 다른 프로젝트들의 기획에 참여했던 경험들이 이번 프로젝트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텀블벅에서 진행했던 <Here I am>과 <세탁소의 여자들>을 진행할 때는 굿즈 제작과 프로덕션 디자인, 홍보 전략 짜기를 메인으로 담당했어요. 이후 닷페이스 웹사이트에서 펀딩을 진행한 <간호사, LIF> <내가 만드는 하루>에서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며 일의 범위를 확장했어요.

한동안은 혼란스럽기도 했어요. 프로젝트에서의 역할을 자꾸 확장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고, CS와 뉴스레터 발송, 홍보 게시물 작성 같은 루틴 한 업무를 맡는 것도 버거웠어요. '내가 지금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는 게 맞나?' '내가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어서 다른 일까지 맡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내가 만드는 하루>의 사용자 경험 지도를 짜 왔을 때 프로젝트 리더인 혬이 해준 조언을 듣고 안개가 걷힌 기분이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의 이유를 만들어주는 말이었거든요.

“저는 헵시바가 하고 있는 디자인 외의 일들을 보면 헵시바가 디자인 +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닷페피플과 가장 가까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해봤기 때문에 사용자 경험 지도가 이렇게 구체적 시나리오로 나올 수 있었고요. 디자인도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이지만 사람들은 디자인만 인식하지 않잖아요. 한 사람이 종합적 커뮤니케이션을 송출하는 건 어렵고 책임감이 드는 일이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닷페이스를 보는 시선을 곡해시키지 않으면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각과 텍스트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잘 공 굴리기를 하다 보면 일할 때 숲을 더 잘 볼 수 있을 거예요.”  


닷페이스에서 일하기 전과 지금, 스스로 어떤 부분이 가장 달라졌다고 생각하세요?

김헵시바: 바뀐 게 한 두 개가 아니지만, 가장 많이 변한 것은 페미니스트로서의 저예요. 더 어린 페미니스트였던 예전의 저에게 페미니즘은 말하기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었어요. 저의 말이 제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을 입증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 하나하나에 힘을 실었죠. 이때의 저를 회고하는 글을 예전에 쓴 적이 었어요. ‘누구라도 이 거대한 불평등을 모른다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외로웠던 나에겐 이 거대한 파도를 같이 타 줄 친구가 필요했다. 나는 친구들을 계몽하는 일에 심취해 있었다. 그리고 그 계몽은 매우 서툴렀다.’

이때의 저를 '뭘 몰랐다'라거나 '치기 어린 시절이었다'라고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때의 시간은 저를 놀랍도록 많이 성장시켜줬고, 그때의 저는 제 진심에 충실하려고 노력했거든요. 하지만 닷페이스에 온 이후로 사람들의 삶의 결은 생각보다 다양해서 계몽을 위한 토론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다른 방법을 더 많이 상상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고요. 그 다른 방법들을 찾고 실행하는 건 제가 매일매일 하는 '일'이 되기도 했죠. 다른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게 되었고, 신념은 더 단단해졌어요. 지금 저에게 페미니즘은 '일과 삶'으로 실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INTERVIEW. 황효진 (빌라선샤인 콘텐츠 디렉터)